사실주의 영화를 보면 가끔은 영화가 묘사하는 현실의 모습에 불편할 때가 있다.. 그 이유는 영화가 그리는 현실이 실제의 그것보다 더 현실적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묘사된 현실은 실제 현실이 가지고 있는 치부를 왜곡없이 스크린에 투사하면서 보는 이의 시선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우리가 영화에서 기대하는 현실은 사실은 이상적인 이데아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 마치 사실주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불편함이 있다..

인도인에 의해 쓰여진 인도인의 이야기.. 상실의 상속에서 바라보는 인도의 모습은 표현하고 있는 시대가 다르긴 하지만 '세계는 평평하다'의 저자 '토마스 L.프리드먼'이 바라본 인도의 모습과는 분명 다른 이미지다.. 그것은 인도인만이 바라볼 수 있는 자국의 현실에 대한 자기객관화는 아닐 것이다.. 빠르게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이면의 모습이 있었고 그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불편한 진실로 다가온 것 뿐이다..

냉전시대 정치적 구분에 의해 만들어진 제3세계의 개념은 경제적 개념으로 바뀐 이후 단순히 국가 분류의 개념이 아닌 1, 2순위로 올라설 수 없는 3순위의 국가 개념으로 그 의미가 고정되어가고 있고 9.11 이후 그 상황은 더욱 굳어져 가고 있다.. 상실의 상속은 제3세계 국가인 인도에서 태어난 인도인의 삶을 1980년대 시간적 배경을 빌려 기록하고 있지만 진정 말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의미는 제3세계와 제1세계가 경제적, 문화적으로 충돌할 경우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관찰의 기록이다..

제3세계와 제1세계가 부딪히며 발산되는 폐해는 힘없는 개인에게 상실이란 형태로 고스란히 남겨진다.. 상실이 짓누르는 무게를 감당하기엔 이들은 너무나도 나약하다.. 내면에서 곪을대로 곪은 상처는 결국 분노로 표출되고 그것은 다른이에게 상처를 입히며 또 다른 상실을 전이시킨다..

잃어버려야 할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것이 상실로 남겨진 이유는 다름아닌 자기 부정의 결과다.. 자신이 제3세계의 피를 이어받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 싶어하는.. 이는 뿌리에 대한 부정이자 근본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다..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나름대로의 극복을 위한 방편으로 행해진 자기 부정이기에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대를 이어온 굴욕의 역사를 벗어나고자 발버둥치지만 그들은 결국 그들이 태어난 그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판단력의 상실로 전이된다..

서로 다른 세계의 충돌이 가져다 준 여파는 가치관의 혼란으로 남겨진다.. 그 혼란은 놀랍게도 지금 우리가 가진 혼란과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서 묘사하는 개개인의 삶은 기준이 모호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현실을 투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어쩌면 그런 현실을 구성하는 미장센의 한 요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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