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1 때로 기억한다.. 아버지께서 일본에서 중고로 구입해 오신 디지털 신디사이저.. KORG 에서 나온 WaveStation 이란 이름의 그 악기는 사실 첫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일단 음색이 매우 낯설었고 키보드처럼 이미 설정되어 있는 음색을 선택해서 연주할 수 있는게 아닌 음색 하나 하나를 만들어야 하는 (물론 기본적인 음색들이 있긴 했지만) 작업 자체가 그리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다.. 몇번 만져보다 관심 밖으로 이내 멀어졌다..

그 녀석에게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4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키보드에서 낼 수 있는 음색의 한계를 직시하게 되자 뭔가 내가 만든 음색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시선 밖에 서있던 WaveStation 이 다시 눈에 들어 왔다..

매뉴얼 자체가 어렵기도 했지만 신디사이저라는 악기의 개념 자체를 잡는 것이 힘들었다.. 대학 밴드 하던 고등학교 동창 녀석에게 미디라는 것을 귀동냥으로 주어 들은 게 디지털 음악 지식의 전부였던 터라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도 계속 하다 보니 음을 조금씩 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이 녀석의 재미란 걸 알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서 통보 아닌 통보가 날아왔다.. 당시 집안 사정이 아주 좋지는 않았던 터라 악기를 팔아야 겠다는 말씀이셨다.. 다음에 더 좋은 악기를 구할 수 있을테니 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팔도록 하자.. 이 무슨..

PC 동호회에 모델명을 남겼고 누군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하철을 타고 이 녀석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는 곳까지 그 무거운 녀석을 가방에 넣어 들고 갔다.. 옛날 다방 같은 커피숍에서 만난 구매자는 다행히 사람이 좋아 보였다.. 그는 예전에 이 제품을 써봤다가 악기를 바꾸며 판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다시 이 제품을 찾으려 백방을 수소문 했더라는 얘기를 전해 주며 다시는 이 악기를 팔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감사하다며 자리를 일어났다.. 손에는 악기값이 담겨져 있는 봉투가 주어졌다..

돌아오는 길 내내 맘이 답답했다.. 눈물도 나지 않는 이 상황이 답답했다.. 이 녀석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답답했고 비록 물건이었지만 이렇게 떠나 보내야 하는 상황도 답답했다.. 그렇다고 목이 메이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답답했다..

그 이후였던 것 같다.. 무언가와 이별하는 상황에 부딪힐 때 마다 답답했다.. 그 상황을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고 그렇게 안되려고 했고,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겪게 된다면 가능한 빨리 잊어버리려 했다..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2년 전에 산 아이폰 3GS의 카메라가 고장이 났다.. 액정부터 배터리, 충전 모듈까지 교체를 한 터라 이번에 부품을 교체하게 되면 4번째 교체다.. 새 제품으로 바꾸면 될 것을 고집스레 붙잡고 버티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이 녀석을 그렇게 떠나 보내고 싶지는 않아서 일터다.. 고장이 나서 더이상 못쓰게 되더라도 지금은 바꾸고 싶지 않은 거다..

남은 삶에서 얼마나 더 많은 이별을 겪게 될지 아직 모른다.. 마음이 답답한 상황 또한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 가운데엔 예정된 이별도 있음에 굳이 그것을 회피할 생각도 여력도 없지만 이 또한 사는 모습의 한 부분이니 감내하는 게 맞을 것이다.. 답답하더라도 숨은 쉬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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