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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첫 주..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전부터 큰 애가 보고 싶다고 한 영화를 보기 위한 외출이었다.. 영화의 제목은 아더 크리스마스(원제 : Arthur Christmas)..
그리 큰 기대를 하고 본 영화는 아니었지만 의외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던 영화였고 매우 재밌게 감상하고 자리를 일어날 수 있었다.. 영화 스토리는 이 블로그 말고도 워낙 많은 포스팅들이 인터넷에 있으니 참고하시면 되겠다..

이슈는 집에 온 이후에 발견되었다.. 집에 와서 영화관에서 가져온 리플랫을 보면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리플랫 어디에도 산타 부인(Mrs. Santa) 즉, 아더의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지 않은 것이었다.. 포스터를 살펴봐도 산타 부인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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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토리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했던 산타 부인


영화 스토리가 아더와 산타, 아더의 형 스티브를 중심으로 진행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산타 부인의 비중이 그리 작은 것도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스토리 진행 상 중재자의 역할을 했던 산타 부인이 리플랫이나 포스터 어디에도 소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의문이었다..

아더 크리스마스 국내 포스터

아더 크리스마스 국내 포스터


가끔 국내용 포스터가 공식 포스터와 다르게 디자인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공식 사이트(Official International Movie Site)인 http://www.arthurchristmas.net/ 에 접속을 했다.. 사이트 첫 화면에서 보이는 것이 바로 공식 포스터의 모습.. 여기에서는 산타 부인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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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크리스마스 International Site




그렇다면 국내 포스터에서만 산타 부인의 모습을 삭제한 것일까..?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 전에 사실 관계를 파악해 보기 위해 좀 더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형태의 포스터가 있었는데 그 중 공식 포스터 스타일로 만들어진 포스터를 중심으로 검색해 본 결과 해외에서도 산타 부인의 모습을 뺀 포스터가 있음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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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를 확인해 보니 이 포스터는 Sony Pictures 에서 만든 http://www.arthurchristmas.com/ (Official Site) 에서 보여지는 공식 포스터였다.. 이 공식 포스터에선 산타 부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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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크리스마스 공식 사이트


왜 동일한 영화 포스터에서 산타 부인이라는 캐릭터만 이러한 식으로 처리가 되고 있는 것일까? 관련한 히스토리가 있을까 싶어 자료를 뒤져봤지만 어디에도 만족할 만한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 동안 산타라는 캐릭터가 가부장적인 이미지를 대표한 것도 아니었고 어차피 픽션으로 처리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인데 그런 이미지를 굳이 부여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타 부인이라는 캐릭터의 존재를 이러한 형태로 처리하는 것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포스터에서 노출이 되느냐 안되느냐는 매우 작은 이슈제기일 수 있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가족 영화라는 포지셔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이란 구성원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영화 스토리 상에서는 잘 녹여내고 있지만 정작 그 외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선 그리 큰 고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 스토리 전개 상 엑스트라 역할만 하던 요정들까지 주요하게 배치를 하면서 산타 부인을 제외하는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매우 재밌게 본 영화였지만 참 어이없는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 두개 포스터를 자세히 비교해 보면 산타 부인을 배치하면서 포장 요정과 루돌프(?) 뿔의 위치가 변동이 됨을 알 수 있다.. 이 의미는 산타 부인을 배치하면서 포스터가 새로 제작이 되었다는 의미인데 그렇게 살펴 보니 더더욱 히스토리가 궁금해진다.. 
고 1 때로 기억한다.. 아버지께서 일본에서 중고로 구입해 오신 디지털 신디사이저.. KORG 에서 나온 WaveStation 이란 이름의 그 악기는 사실 첫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일단 음색이 매우 낯설었고 키보드처럼 이미 설정되어 있는 음색을 선택해서 연주할 수 있는게 아닌 음색 하나 하나를 만들어야 하는 (물론 기본적인 음색들이 있긴 했지만) 작업 자체가 그리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다.. 몇번 만져보다 관심 밖으로 이내 멀어졌다..

그 녀석에게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4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키보드에서 낼 수 있는 음색의 한계를 직시하게 되자 뭔가 내가 만든 음색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시선 밖에 서있던 WaveStation 이 다시 눈에 들어 왔다..

매뉴얼 자체가 어렵기도 했지만 신디사이저라는 악기의 개념 자체를 잡는 것이 힘들었다.. 대학 밴드 하던 고등학교 동창 녀석에게 미디라는 것을 귀동냥으로 주어 들은 게 디지털 음악 지식의 전부였던 터라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도 계속 하다 보니 음을 조금씩 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이 녀석의 재미란 걸 알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서 통보 아닌 통보가 날아왔다.. 당시 집안 사정이 아주 좋지는 않았던 터라 악기를 팔아야 겠다는 말씀이셨다.. 다음에 더 좋은 악기를 구할 수 있을테니 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팔도록 하자.. 이 무슨..

PC 동호회에 모델명을 남겼고 누군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하철을 타고 이 녀석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는 곳까지 그 무거운 녀석을 가방에 넣어 들고 갔다.. 옛날 다방 같은 커피숍에서 만난 구매자는 다행히 사람이 좋아 보였다.. 그는 예전에 이 제품을 써봤다가 악기를 바꾸며 판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다시 이 제품을 찾으려 백방을 수소문 했더라는 얘기를 전해 주며 다시는 이 악기를 팔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감사하다며 자리를 일어났다.. 손에는 악기값이 담겨져 있는 봉투가 주어졌다..

돌아오는 길 내내 맘이 답답했다.. 눈물도 나지 않는 이 상황이 답답했다.. 이 녀석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답답했고 비록 물건이었지만 이렇게 떠나 보내야 하는 상황도 답답했다.. 그렇다고 목이 메이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답답했다..

그 이후였던 것 같다.. 무언가와 이별하는 상황에 부딪힐 때 마다 답답했다.. 그 상황을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고 그렇게 안되려고 했고,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겪게 된다면 가능한 빨리 잊어버리려 했다..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2년 전에 산 아이폰 3GS의 카메라가 고장이 났다.. 액정부터 배터리, 충전 모듈까지 교체를 한 터라 이번에 부품을 교체하게 되면 4번째 교체다.. 새 제품으로 바꾸면 될 것을 고집스레 붙잡고 버티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이 녀석을 그렇게 떠나 보내고 싶지는 않아서 일터다.. 고장이 나서 더이상 못쓰게 되더라도 지금은 바꾸고 싶지 않은 거다..

남은 삶에서 얼마나 더 많은 이별을 겪게 될지 아직 모른다.. 마음이 답답한 상황 또한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 가운데엔 예정된 이별도 있음에 굳이 그것을 회피할 생각도 여력도 없지만 이 또한 사는 모습의 한 부분이니 감내하는 게 맞을 것이다.. 답답하더라도 숨은 쉬어야 하니까..

R.I.P. Steve Jobs

2011/10/19 22:57 | my notes
R.I.P Steve Jobs


지난 10월 5일.. Steve Jobs가 세상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그날 이 블로그도 설정에 문제가 생겨 데이터를 복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이제서야 뒤늦게 그의 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하게 되었다..

처음 PC를 접한 것이 초등학교 2학년..(http://mcfuture.net/311) 처음 본 순간 그 PC는 아무것도 모르던 한 어린 아이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렸다.. apple ][ 카피 모델로 기억되는데 beep 음으로 멜로디를 만들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이제 그는 그가 이룬 혁신을 뒤로 하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가 세상을 바꾼 것처럼 이 세계 어디에서 또 누군가의 혁신이 뒤를 이을 것이다..

그가 항상 얘기했던 그 말들을 기억하며 다시 한번 그를 기린다.. Think Different.. 나이와 상관없이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왜라는 의문을 가졌던 계기는 그의 영향 때문이었다.. 부디 영면하길..

R.I.P. Steve Jobs..
요즘은 욕실 주변기기들이 예전에 비해 다양한 제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한 것들 중 대표적인 것이 잡지꽂이를 들 수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불과 몇년 전만해도 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책을 들고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런 행동이었다.. (물론 본인의 경우다..)

욕실에 비치되어 있는 잡지꽂이 중 알루미늄 소재로 만들어진 제품이 있는데 대략 아래 형태의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물론 좀더 멋진 디자인들이 많이 있지만 거의 이러한 형태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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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디자인은 깔끔한 디자인이긴 하지만 실제 사용성 측면에서 보면 잘못된 디자인이다.. 과연 어느 부분이 잘못된 것일까?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름아닌 잡지를 잡아주는 대각선 바의 방향에 있다.. 이 형태의 잡지꽂이에 잡지나 책을 비치하게 되면 시간이 지날 수록 책의 모서리 부분부터 중력의 영향으로 꺽이게 되어 책이 휘어지게 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출간되는 책의 제본 형태는 정면에서 바라볼 때 왼쪽 부분을 철하여 만들어진다.. (이러한 형태의 제본 방식을 좌철제본이라고 말한다) 보통 잡지꽂이에 책을 꽂을 때 표지가 보이도록 놓게 되는데 옆에 있는 디자인의 경우 좌철제본으로 만들어진 책의 경우 제본 부분은 바가 잡아주게 되어 문제가 없지만 책이 넘겨지는 페이지 부분은 전혀 힘을 받지 못해 책의 오른쪽 상단부터 서서히 휘어지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그 꺽임의 정도는 더 심해지고 결국 책이 휘어지게 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만약 위 디자인에서 바의 대각선 방향이 좌상-우하가 아닌 좌하-우상 형태로 되어 있었다면 책은 꺽이지 않을 것이고 잡지꽂이는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제품으로 되었을 것이다.. 제품 디자이너가 실제 잡지를 꽂은 상태에서의 사용성을 깊게 고민하지 않았음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더 아쉬운 점은 이러한 디자인을 그대로 모방한 잡지꽂이가 의외로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 디자인이 갖고 있는 사용성의 문제가 그러한 제품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제품을 설계하거나 서비스를 디자인할 때 사용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만 실제 적용되어 사용해 보기 전에는 그것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바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제품을 기획하는 초기 단계부터 UX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깊이 고민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것이야 말로 바로 서비스를 설계하는 이들의 몫이자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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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i Ito 이야기..

2011/05/16 00:16 | my notes
몇주 전 트위터에 흥미로운 트윗 하나가 올라왔다.. MIT 첨단연구소 소장은 대학도 졸업 안했다라는 내용이었는데 그 이야기가 담겨 있었을 링크로의 연결은 이미 페이지가 사라진 후여서 이 내용에 대한 개인적인 검증이 필요했다.. 해당 트윗의 내용이 의심되었다기 보다는 정확한 사실로 내용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단 MIT 첨단연구소라는게 참 광범위한 얘기라서(MIT는 학내 각 분야별로 첨단연구소가 있는 관계로..) MIT Media Lab 쪽일 가능성에 우선 순위를 두고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래 내용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다..

New Director of MIT Media Lab Talks of Encouraging Openness

MIT Media Lab의 Director로 온 인물은 CC 쪽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그 이름을 한번 쯤은 들어봤을 CC CEO Ito Joich 였다..(Joi Ito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도 작년에 방한하여 CCK 컨퍼런스에 참석을 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기사의 내용을 보면 몇가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데 그가 대학을 중퇴했다는 내용과 WoW(World of Warcraft)에 대한 언급이다.. 이러한 내용들 때문에 트위터에 언급되면서 Joi Ito에 대해 좀더 흥미로운 접근이 이뤄진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이 내용들은 Joi Ito에 대해 얘기를 할 때 자주 접하게 되는 내용이지만 MIT Media Lab의 Director로 오게 되면서 다시 한번 세간의 화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위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접하게 된 이야기들이 중요하게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특히 그의 학력에 대한 평가는 MIT Media Lab의 Director로 오게 되면서 좀더 부각이 된 것 같았다.. 그 점이 부각되면서 국내 교육 실정이나 환경에 대한 이야기들이 함께 연관지어졌는데 사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맞는 의견이긴 하지만 Joi Ito가 걸어온 길을 살펴본다면 오히려 그의 학력은 그가 만들어온 삶의 영역에선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인물이 MIT Media Lab의 Director가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온 그의 삶이 더 중요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되짚어 보면 Apple의 Steve Jobs나 MS의 Bill Gates 역시 앞의 관점의 연장선에선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CEO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사실이 이들의 업적을 평가하는데 다른 관점을 부여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국내의 환경이 여러가지로 학력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장벽이 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실정에 대해 이러한 사례들을 빗대어 실정 자체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만들어진 프레임이 불합리하다면 비난만을 할 것이 아니라 그 프레임을 깨뜨릴 대안을 마련하거나 스스로 그 벽을 넘어서도록 해야 한다.. 스스로의 힘이 부족하다면 프레임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결집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Joi Ito가 MIT Media Lab의 Director가 된 것이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의 학력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라는 것이 아닌 그가 어떠한 노력과 과정으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갔고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 기존의 프레임을 깨뜨렸는가 라는 점이다..
tnm에 합류하게 된지 벌써 반년.. 내게 있어 tnm으로의 이직은 단순히 회사를 옮긴 개념이 아닌, 집을 떠나서 더 큰 세상 가운데 여기 저기 둘러보며 새롭고 낯선 경험을 접한 후 다시 고향집에 돌아온 누군가의 이야기를 닮았다..


우연
2005년 9월.. 우연히 방문한 첫 회사 공채 후배가 만든 홈페이지.. 처음 들어본 블로그라는 이름.. 그리고 태터툴즈..
정말 우연한 계기로 태터툴즈를 접했고 마침 개인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 보려던 차에 태터툴즈로 블로그를 만들었다..
너무나 작은 시작이었기에 그 발걸음이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버전업
Classic RC, Classic OR, migrator.php, tattertools 1.0.2.. 그리고 한걸음 더 가까이

오픈하우스
2006년 3월 첫번째 태터툴즈 오픈하우스.. tnc 구성원과의 첫 만남.. 그들의 눈빛에서 작은 희망을 읽었고 비전을 읽었고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생일 전날 열린 행사.. 선물은 이 모임에 참석한 것만으로 충분했다..

설득 그리고 3개월..
오픈하우스 이후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하면 tnc에 들어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들의 비전에 같이 참여할 수 있을까? 학부시절 처음 접했던 인터넷.. 그 때 그 흐름 가운데 함께 하지 못해 계속 맘속에 가지고 있던 그 후회를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아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왜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려 하느냐는 질문에 해줄 수 있는 답이란 내 꿈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3개월여의 설득.. 드디어 조건부 수락이 떨어졌다.. tnc의 합격통지를 받아오면 허락하겠다..

기획자를 뽑지 않는다
3개월 설득 기간동안 두번의 구인공지가 tnc에 올라왔다.. 한번은 디자이너.. 한번은 개발자.. 어, 기획자는 뽑지 않는건가?
오랜 고민 끝에 당차게도 CEO였던 Chester님을 구글 톡에 등록하고 대놓고 물어봤다.. 혹시 기획자는 안뽑으시나요? 네. 지금은 모시고 싶어도 여력이 없네요. 메신저 너머 조용히 답변이 전해졌다.. 아..네.. 아쉬움과 함께 가슴이 먹먹해졌다..

태터앤프렌즈
그 해 5월.. 오픈하우스 이후 지지부진한 태터툴즈의 행보를 개선하고자 태터툴즈 유저들이 스스로 모임을 결성했다.. 태터앤프렌즈의 시작 그리고 첫 모임.. 뭔가 동호회도 커뮤니티도 아닌 독특한 성격의 이 모임은 이후 태터네트워크재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첫 모임에서 만난 이들 중 절반 이상이 현재 니들웍스의 멤버.. 그 시작의 자리에 있던 것이 태터툴즈와의 또 다른 인연의 시작이었다..

합류
6월 초.. 구글 톡의 메시지로 전달된 소식.. 같이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꿈을 향한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래.. 하고 싶은 것을 한번 원 없이 해봐라.. 그 기쁨의 한켠에 아내의 웃음이 함께 했다..

티스토리
함께 티스토리 서비스를 만들었던 루나모스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든 서비스를 누군가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뿌듯하다.. 나 역시 웃음으로 화답했다..

블로그의 메디치家가 되겠습니다.
한달 동안 정말 정신없이 준비되었다.. 오픈 간담회 발표자료를 다시 만들기를 몇번.. 블로그를 만들던 기술기반 회사가 과연 미디어 기반 서비스를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tnc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해보지 않았던 서비스였기에 모험과 다름 없었지만 남이 만든 길을 걸어가는 것은 애초에 의미가 없었다..

블로그의 메디치家가 되겠다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밝히기에는 너무나 작은 모습이었지만 그 자리에 함께 했던 파트너들이 있었기에 그 포부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 꿈을 말했던 이들을 우리는 태터앤미디어라고 불렀다..

태터앤미디어 사이트 개편
파트너들이 만든 컨텐츠가 좀더 주목받을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고 싶다.. 미디어로의 실험을 동시에 이뤄보고자 했던 사이트 리뉴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캡쳐화면에 올라와 있던 문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태터앤미디어를 통해 미디어로서의 영향력을 업그레이드 하세요' 그 비전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헤어짐
티스토리 서비스가 다음으로 이관된 후 새로운 개념의 블로그 서비스를 다시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텍스트큐브닷컴..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서비스였기에 그 애정은 마치 자식을 키워나가는 그것과 같았다.. 하지만 미처 자란 모습을 보기도 전에 스스로 그 손을 놓아야 하는 아픔이 다가왔다.. 허탈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노라고 속으로 되뇌였다.. 목젖을 무언가 뭉클하게 짓누르며 올라왔지만 억누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헤어졌고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그 일이 진행되던 중에 태터앤미디어는 다른 방향에서 분리되는 아픔이 있었다.. 법인독립이란 이름하에 한 공간에서 일하던 이들이 나뉘었다.. 그것은 팀으로의 태터앤미디어에서 회사로의 태터앤미디어로 변하게 되는 과정이었지만 겉에서 보는 모습과 당사자들이 느낀 감정은 사뭇 달랐으리라.. 되짚어 보면 부끄럽지만 당시 난 그들과 얘기를 나눌 여력이 없었다.. 당장 앞으로 갈 길을 찾는 것이 눈앞에 남겨진 현실이었다..

통합
블로거닷컴과 통합합니다.. 끝..
젠장.. 이럴거 였으면 뭐하러...

Good-Bye 1337
공간과의 이별은 그 공간에 담긴 추억과의 이별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tnc에서 tnm으로 이어졌던 그 공간은 그렇게 이별이란 의식을 통해 추억으로만 남겨지게 되었다..

왜? 무엇을?
왜 여기에 있게 된걸까?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tnc를 떠나게 된지 3년.. 하루 하루가 고민의 연속이었다.. 일은 바쁘게 돌아갔다.. 프로덕트 매니저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유저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통해 보람을 느꼈지만 그것이 왜 내가 여기 있는가에 대한 답을 주진 못했다..
3년차로 접어들던 어느날.. tnm 공동대표인 영님에게서 연락이 전해졌다.. 그 때 이루지 못했던 꿈을 다시 한번 이뤄보자.. 그 때 비로서 고민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잊었던 꿈을 기억속에서 다시 꺼냈다..

돌아옴
다시 꿈을 꾸기엔 너무 늦은 시점이 아닐까? 일주일 동안 고민을 했다.. 결국 너는 하고 싶은 것을 할거 아냐? 아내의 촌철살인.. 그 말이 맞았다.. 살아오면서 적어도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한 적은 없었다..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선택했다..

낯설지만 익숙한
다시 돌아온 tnm은 예전의 그 tnm은 아니었다.. 그만큼 성장해 있었고 많은 이들이 새로운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낯설음 가운데 느껴지는 편안함은 낯설지만 익숙함이었다..

tnm에 다시 오게 된지 6개월.. 그 사이 정말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했고 많은 일들이 오고 갔다.. 가끔은 일에 치여 지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은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으로 남는다.. 개인적인 바램은 이들과 함께 tnm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꿈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언젠가 내 아이들이 그 때 아버지는 무얼 하셨나요라는 질문을 던질 때 '그 때 나는 tnm에서 세상을 바꾸었단다'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그것이 잊었던 내 꿈이었음을.. 그 꿈을 꼭 tnm에서 이룰 수 있도록 다시 맘을 다져본다..
tnm이 창립 3주년을 맞이하여 축하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1등 상품은 무려 iPad2 혹은 갤럭시탭 10.1인치!!

저 역시 이번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맥북 에어의 키보드를 이태리 장인이 스치고 지나간 이태리 타올(?) 계열의 수건으로 깔끔하게 닦고 이벤트 포스팅을 곧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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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m 3주년 축하 이벤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ttp://blog.tattermedia.com/251 를 참고하세요~ :)

김영갑 갤러리

2011/03/18 22:14 | ordinary
지난 2월 마지막 주.. 회사에서 제주도로 MT를 다녀왔다.. 이미 가족들과 몇번의 여행을 통해 접했던 제주도였지만 찾아갈 때마다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접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나름 기대가 되었던 MT였고 역시나 제주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김영갑이란 이름은 갤러리를 방문하면서 처음 접한 것이었다.. 출발 전 귀동냥으로 제주도의 유명한 사진작가라는 정도의 이야기만 접한 것이 전부였다.. 깁영갑 갤러리(두모악)는 시골 동네의 작은 폐교를 갤러리로 개조하여 운영하고 있었는데 갤러리 초입에 짙은 주황색의 양철로 만든 듯한 조각 작품 하나가 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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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본 갤러리의 모습은 단촐했다.. 작은 토우들로 정원을 꾸민 것이 전부였고 그 어느 것 하나 특별히 튀어 보이지 않은 채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삼달국민학교라는 패가 예전에 이 자리가 학교였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저 기둥 사이에 자리잡았을 교문으로 그 언젠가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지나갔으리라.. 날씨가 매우 좋았지만 제주도 답게 바람이 매우 거셌던 터라 빨리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일 참이었다.. 마침 갤러리 뒷편에 무인찻집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함께한 일행들과 커피를 마신 후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갤러리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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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매표소 건너편에 김영갑 작가의 작업실이 보존되어 있었다.. 작업실이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그가 이생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던 터라 단순히 어느 작가의 사진을 전시하는 공간으로만 갤러리를 받아들이고 있던 나에게 그 사실은 공간을 접하는 마음을 달리 먹게 만드는 암묵의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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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안은 학교 교실 벽을 허물고 다시 꾸민 것처럼 보였다.. 넓은 공간에 전시되고 있는 사진들은 작가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연작 형식으로 동일 장소에서 계속 변하는 자연의 모습(특히 구름이나 빛의 모습들)을 담아낸 사진들은 동일한 곳이라도 시간의 변화에 따라 그 모습이 얼마나 다양하게 바뀌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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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사인은 루게릭병이라 했다.. 매일 무거운 삼각대를 메고 언덕을 오르내리며 다녔기에 처음에는 근육통이 좀 심한 형태로 나타나는 줄 알았다 한다.. 갤러리 구석마다 적혀있던 글귀들은 그가 이름도 흔히 듣기 힘든 병마와 얼마나 사투를 벌였는가를 알게 했다.. 때론 원망으로 때론 체념으로 적어져 내려갔던 글들이었지만 결국은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져 가는 것을 보며 나약한 인간의 모습 속에 담겨진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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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한켠에 보관되어 있던 생전에 고인이 읽었던 책들의 모습.. 그 책 들 사이에 눈에 들어온 '사람을 살리는 생채식'.. 제목을 접한 순간 그가 가지고 있던 삶에 대한 애정이 어떠했을까를 떠올리며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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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열매에 집착하지 않는다.. 자연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결국 순리대로 살아갈 뿐이다.. 사실 열매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버리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선택과 과정이 있었기에 열매를 맺게 되고 그 열매는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진다.. 김영갑 갤러리의 방문은 그것이 삶의 모습이고 그것이 자연의 모습임을 느끼게 해준 좋은 경험이었다..




 



IE6 카운트다운..

2011/03/08 17:53 | IT IS IT/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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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된지 이제 10년.. 그러나 IE6의 생명력은 MS마저도 놀랄만큼 끈질겼다..
급기야 IE9 출시를 앞두고 http://www.theie6countdown.com/ 사이트까지 만들면서 IE6의 퇴출을 이끌고 있는 MS의 지금 심정은 어떠할까? 그 사이 Save the Developer! 같은 캠페인도 있었지만 개발자를 살리자는 문구가 대중에겐 와닿지 않았나 보다.. 이러한 와중에 점유율 24.5%를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안타깝다..
2011년 새해 첫 하루가 벌써 지나가는군요..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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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from : http://www.flickr.com/photos/jurvetson/333542752/in/photost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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