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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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ordinary 2009/08/14 23:37
간간히 집안 구석을 가로질러 가는 바람.. 바람이 지나가며 현관에 매달아 놓은 풍경을 건드려 미세하게 흔들린다.. 흔들리는 풍경의 움직임마저 없다면 사진과 다를 바 없는 실내.. 시간은 상태의 변화가 있을 때에만 측정이 가능하다는 말을 체험하는 순간이다.. 모든 것이 멈춰져 있다.. 익숙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침묵은 그 익숙함을 충분히 낯선 곳으로 만들어버린다.. 시선에 잡히는 공간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잠깐 선잠이 들었었나보다.. 입고 있던 옷에 땀이 살짝 배인 것을 느낀 순간 잠에서 깬다.. 더운 공기를 어떻게든 몰아내보고자 선풍기를 돌려 본다..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는 순간 눈 앞의 화면이 바뀌어 있다.. 원두막 그늘에서 바람을 맞으며 누워있는 한 아이가 보인다.. 이제는 지질할 법도 하건만 여름방학 내내 그렇게 외갓집에서 가족과 떨어져 홀로 보내는 일상을 즐기고 있다..

불현듯 깨닫는다.. 그 자리에 어머니가 안 계신 이유를..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해마다 방학이 되면 외갓집에 날 맡기시곤 서울로 다시 올라가셨다.. 기억을 거슬러 보니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론 방학이 되어도 외갓집에 내려가지 않았다.. 전과 달라진 것은 우리 가족에게 집이 생겼다는 것과 가업이 망한 후 아버지께서 단지 장남이란 이유로 떠 안아야 했던 집안의 빚을 더이상 갚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뒤로 한채 방학 내내 실컷 놀아도 된다는 것에 들떠 있던 아이의 모습은 철없는 모습 그것이었다.. 그걸 이제서야 깨닫는구나.... 손에 힘이 빠진다.. 난 아직도 철이 덜 들어 있었다..
2009/08/14 23:37 2009/08/1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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