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이 가지고 있는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채 피상적으로만 실체에 접근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면서도 우려되는 행동이다.. 이 시도가 위험한 이유 중 하나는 본질이 내포하고 있는 원래 의도조차도 피상적인 부분만 남겨져 원래의 의도가 희석된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설명을 해보자.. 한 때 블로고스피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된장녀라는 말이 있다.. 초기에 이 단어가 의미하던 것은 분수에 맞지 않게 사치를 하고 돈만 밝히는 개념없는 여성을 일컫는 것이었다.. 그러한 된장녀의 표본적 대명사로 '스타벅스 커피'를 포함한 대표적인 대상들이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비난을 받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단순히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된장녀가 되는 것으로 의미가 변하기 시작했다.. 가끔 블로고스피어를 돌아다니며 올린 글들을 보다 보면 '자신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지만 된장녀는 아니다'라는 변명아닌 변명을 올리는 블로거들을 보게된다.. 물론 스타벅스 커피가 상당부분 된장녀와 동일시되는 의미로 대중에게 전달이 되었던 영향이 제일 크겠지만 된장녀라는 단어가 가진 본질의 의미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고 된장녀와 스타벅스 커피와의 관계 또한 그러한 연관관계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되짚어 생각하는 이들은 우선 겉으로는 적어 보인다.. 그러기에 위 블로거의 예처럼 굳이 자신이 된장녀가 아님을 말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의 의미가 희석된 관계로 변명을 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가끔씩 사회가 점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다는 목적 하에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만 해석을 남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빠른 판단과 의사결정이 중요시되는 현대에 있어서 본질의 깊은 부분의 의미까지 짚어가며 의미를 풀어나간다는 것은 어리석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확한 기준이라는 것은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 부터 시작된다.. 어떤 것이 올바른가에 대한 정답은 과연 그 본질이 가지고 있는 참된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부터 시작된다.. 피상적인 해석만으로는 결코 그 근원의 중심에 도달할 수 없다..
2006/11/27 18:22 2006/11/2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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