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기록에 의존한다.. 이 말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현 세대에게 있어 잊혀진 혹은 그 존재를 알 수 없는 역사라는 의미와 같다..
1871년 이들이 남긴 기록과 유물이 발굴되고 그 기록이 100여년에 걸쳐 해독되기까지 우리는 이들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일반 대중 만이 아닌 역사가들 조차 이들에 대해 아는 것은 단지 성경에 기록된 단편적인 문구 하나 뿐이었다.. 바로 히타이트 민족에 대한 이야기다..

발굴과 해독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히타이트 민족의 숨겨진 역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장장 1세기에 걸친 기간동안 고고학자들과 언어학자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며 노력을 했는가에 대한 생생한 현장의 모습이자 또 하나의 기록이다.. 이 책의 저자는 고고학 분야에서 명성이 자자한 세람(C. W. Ceram)이다.. 고고학과 관련된 저서들(우리나라에선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이란 저서가 유명하다)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정작 그는 고고학을 전공하지 않은 언론인 겸 작가였다.. 그가 가지고 있는 깊은 인문학 지식과 그의 관심사인 고고학이 만나게 되면서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은 매우 흥미롭게 이 저자가 풀어내는 옛 이야기 속으로 발길을 내딛게 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830년대 텍시에라는 한 프랑스인이 소아시아 지역으로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여행을 시도했다.. 황량한 고원지대를 횡단하던 중 보가즈쾨이라는 마을에서 발견한 엄청난 규모의 폐허.. 그것이 히타이트가 역사 속으로 다시 얼굴을 내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텍시에는 이 거대한 규모의 유적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누가 어떤 이유로 만든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이 여행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소아시아 소묘'라는 여행기를 펴낸다..

이 여행기에서 묘사된 내용과 그림들은 당대 역사가들을 혼란에 빠지게 만든다.. 이러한 규모를 가지고 있던 국가가 소아시아에 있었다면 왜 그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승되지 못하고 있었는가.. 도대체 그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민족은 누구란 말인가.. 이러한 관심은 학자들 사이에 논란과 더불어 이 민족이 누구인지 밝혀내고자 하는 학자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계기가 된다.. 프랑스를 비롯하여 독일, 미국, 영국 등 각국의 고고학자들이 이 호기심을 풀기 위해 유적이 있는 터키를 방문하고 그 실체를 알아내고자 노력을 시작한다..

이집트 벽화에 새겨진 히타이트 전차.. 히타이트 민족은 전차를 이용해 카데시 전투에서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를 이기게 된다..



발굴은 그 과정이 진행되면서 우연이라고 말하기는 너무나도 행운에 가까운 일들이 일어난다.. 마치 히타이트가 수천년동안 잊혀졌던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더 빨리 알리고 싶기라도 하듯이.. 하지만 그 행운처럼 보이는 사건들은 모두 고고학자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어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초기 발굴은 도굴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매우 빈약하고 전문적이지 못한 상태였다.. 발굴 후기로 갈 수록 전문가들이 발굴에 참여하게 되면서 좀더 체계적인 발굴 작업을 통해 사정은 나아졌지만 발굴 현장은 섭씨 60도를 오르내리는 극악의 환경이었다.. 발굴을 진행하는 이들도 힘든 환경이었지만 땅 속에 묻혀있다가 발굴로 인해 외부의 극악한 환경에 노출된 유적과 유물들은 바로 풍화와 부식에 맞서야 되는 상황이었다.. 발굴 자체에 대한 외부단체나 국가의 지원은 있었으나 출토된 유물과 유적에 대한 보존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금 지원을 하지 않았다.. 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일시적으로 그것을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시 덮는 일 뿐이었다..

이 책이 발간된 1955년까지도 발굴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물론 지금도 히타이트 유적은 계속 추가적인 발굴이 진행 중이고 새로운 자료들이 나타날 때마다 히타이트 민족의 역사 또한 계속 갱신되고 보완되고 있다..

앞서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언급했지만 기록된 내용에 대한 해독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이책의 제목 중 한 부분인 해독에 대한 부분은 그 과정이 매우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우리는 이미 이집트 상형문자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해독되었는지를 알고 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하며 발견한 3개의 언어가 새겨진 돌.. 그 유명한 로제타석이다.. 이 돌에는 이집트 상형문자를 구성하는 성각문자와 민중문자 고대 그리스어가 새겨져 있었다.. 로제타석이 발견되었을 당시 이집트 민중문자는 어느정도 해독이 가능한 시점이었으나 성각문자는 그 실마리 조차 찾지 못한 상태였다.. 이 때 샹폴리옹이라는 천재 언어학자가 로제타석의 탁본을 구해 면밀하게 연구한 끝에 성각문자의 해독에 성공하게 되고 이 시점 이후 전 유럽은 이집트 고대 문명의 열풍에 휩싸이게 된다..

Rosetta Stone

image from The British Museum (http://www.britishmuseum.org/)



다시 히타이트어 해독으로 돌아와보자.. 히타이트어가 새겨진 명판이나 점토판들이 다수 발굴되었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히타이트어 역시 고대 이집트 성각문자처럼 상형문자였다.. 이 상형문자를 해독하기 위해선 이집트 상형문자가 해독된 과정과 동일한 과정이 필요했다.. 이 언어의 해독을 위해선 히타이트 버전의 로제타석이 필요했다.. 세람의 표현대로라면 '두 언어의 명문'이 적힌 금석문었다.. 여기서 말하는 두 언어란 히타이트 상형문자와 페니키아 문자를 말한다..

발굴이 진행되면서 '두 언어의 명문'이 기록된 금석문이 발견되게 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두 언어로 기록된 금석문은 발견되었지만 이 두 언어가 서로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이라는 증명이 필요했다.. 그래야 히타이트 상형문자의 해독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히타이트어를 해독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슈타인헤어라는 인물을 통해 이뤄진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계기는 그가 꾼 꿈에서 본 환상을 통해서였다..

  '그날 저녁 밤 늦도록 연구에 몰두하다가 지쳐 잠자리에 든 슈타인헤어는 종종 꿈으로 이어지는 정신적 흥분 상태에 빠져든다. 갑자기 깨어나 앉은 그는 두 마리의 말머리가 연달아 있는 상형문자의 금석문 조작을 환각으로 뚜렷이 본다. 그는 또한 '내가 ...... 하게 하였다' 라는 기호도 보게 된다. 그 때까지 슈타인헤어나 다른 어느 누두고 그 기호를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하지는 못했다. p 305'
 
슈타인헤어가 꿈에서 본 환각은 히타이트의 유적을 처음 발굴한 이후 70여년 동안 학자들이 풀려고 애써왔던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가 되었다.. 이것은 마치 케큘레가 꿈 속에서 벤젠의 화학구조 원리를 깨닫게 된 것과 다름없었다..


히타이트는 20세기가 시작되는 시점까지 우리에게 잊혀진 민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기록 덕분에 후세는 그들을 다시 찾아내고 그들이 남긴 역사와 그 찬란했던 문명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 발굴과 해독은 그 기록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매우 흥미로운 기록이다.. 특히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세람이 풀어내는 생생한 이야기들과 작가로서의 재능을 발휘한 쉽고 재미있는 문체들로 인해 히타이트 민족의 이야기에 더 깊숙하게 빠져들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몇가지 생각 중 하나는 지금 우리 시대가 남기고 있는 기록들은 과연 후세에 얼마나 잘 전달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히타이트 민족이 남겨진 기록은 투박했지만 돌이라는 매우 반영구적인 매체에 기록이 남겨지게 되면서 수천년을 이어서 그 기록이 현세에 전달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남기고 있는 기록의 대부분은 그 보존기간이 채 몇백년을 넘지 못하는 매체들이다.. 특히 최근에 이르러 온라인 상에 기록되는 정보들은 디지털의 힘을 빌어 엄청난 용량의 정보량을 자랑하지만 실제로 보존이나 해독에 있어서는 오히려 히타이트 민족의 기록보다 뒤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다.. 당장 CD나 DVD 같은 매체만 보아도 발표 당시에는 100년의 보존 수명을 보장한다고 했지만 이미 재생에 필요한 플레이어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어쩌면 우리 후손들은 우리가 남긴 매체의 정보를 해독하기 위해서 우리가 히타이트 민족의 기록을 해독하는 노력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 책의 내용을 우연히 접한 후 책을 사려고 온/오프라인 서점을 모두 뒤져봤으나 이미 절판이 된 책이라 구할 수가 없었다.. 1999년 초판 번역본이 나왔는데 이제 10여년이 겨우 넘어가려는 시점임에도 이미 시장에서는 사라진 기록이 되버렸다.. 발굴과 해독이라는 책 제목을 바라볼 때 참 아이러니한 현실이지만 이 또한 이 시대의 기록이 가지고 있는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책을 꼭 읽고 싶은 독자가 있다만 도서관 수장고에서 이 책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 또한 집 근처 시립도서관 수장고에 보관된 책을 어렵게 찾아 대여했다..

책 속에는 발굴 과정에서 발견한 여러가지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접할 수 있는데 이집트 파라오의 왕위를 히타이트 왕족 자손이 이어갈 수 있었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역사의 흐름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지만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궁금한 독자들은 책을 통해 직접 그 내용을 확인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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