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ordinary 2009/08/10 00:54
고등학교 때부터 허물없이 지냈던 친구 셋이 모여서 그 중 한 녀석의 시골집으로 일주일 정도 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었다.. 바쁜 여름철 친구 네 일손도 도와드릴겸 겸사겸사 내려간 여행길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도시를 벗어난 여행길.. 만나는 물줄기, 꺽이는 산 길 하나하나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친구집에 도착하고 여정을 풀자마자 동네를 한바퀴 돌아봤다.. 집 근처에 폐교로 남겨진 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그 친구녀석이 졸업한 초등학교였다.. 한적한 시골 분교였던 그곳은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간 이후 더이상 입학할 아이들이 없자 근처에 있는 좀더 큰 초등학교로 학교가 합쳐지면서 폐교가 된 것이었다..

의자 몇개 정도 남아 있던 빈 교실안에서 세 친구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들뜬 기분으로 내려온 것만 같았던 그 자리에서 세명은 각자가 안고 있던 고민거리들을 서로에게 털어놨다.. 친구이기에 가능했던 속 이야기들을 서로 꺼내고 나누며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그 날 오후 학교 뒷 마당에 심겨져 있던 몇 그루 나무들 중 하나를 골라 개인적으로 준비해갔던 물건 하나를 묻어놨다.. 그것은 내 자신에게 남기고자 했던 약속이기도 했고 자신을 향한 하나의 시험이기도 했다.. 다시 이 자리를 찾을 때 그것을 다시 보면서 이룰 수 있었던 약속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년이 흘렀다..


그 곳을 다시 찾게된 것은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시게 된 연유였다.. 장례기간 동안 조문객들을 맞이하면서 일을 치루고 난 후 다시 상경하기 전 잠시 짬을 내 학교 뒷 마당을 찾았다.. 몇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무의 위치가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내가 묻어두었던 그것은 없었다.. 나무를 잘못 기억한 것일까? 그리 내키지 않는 맘이었지만 다른 나무를 찾아 뒤져봤다.. 어디에도 없었다..

묻어놨던 물건을 찾진 못했지만 그 물건에 담겨져 있던 약속은 사실상 묻어둔 그것을 다시 찾는 것과는 이미 상관이 없는 일이긴 했다.. 굳이 물건을 찾으려 했던 것은 거기에 담겨있던 약속을 물리적 대체제인 그것를 통해 소멸시키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이미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라진 상태가 되었으니 그것으로 모든 것은 정리가 된 셈이었다.. 맘은 편해졌고 스스로에게 단잠을 청하며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서울로 올라왔다..


여행을 준비하는 요 며칠 사이, 잊고 있었던 그 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이는 분명 마음 어느 한자리에 내려놓을 무엇인가가 있었음이다..

여행을 다녀오면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조차 뜸했던 그 친구들에게 전화라도 걸어봐야겠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 멤버끼리 다시 모여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그 시절 그 고민들을 회상하면서.. 이미 지금은 고민도 아닌 그것들을 떠올리며 아마도 친구는 웃음을 머금고 어깨를 짚어 줄 것이다..
2009/08/10 00:54 2009/08/10 00:54
tag {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1 ... 59 60 61 62 63 64 65 66 67 ... 486